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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세계 읽다
초가집 그을음 새까만 설거지통 옆에는
항시 큰항아리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 끝낸 물 죄다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하룻밤 잠재운 뒤 맑게 우러난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텁텁하게 가라앉은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었다
가끔은 닭과 쥐와 도둑고양이가 몰래 훔쳐먹기도 하였다
하찮은 모음이 거룩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도 곧장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냥 하수구에 쏟아 붓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하룻밤 열 내린 뒤 다시 만나자는 듯
곱게 온 곳으로 돌려보냈다
하수구와 도랑에 육안 벗어난 존재들 자기 생명처럼
여긴 배려였으니, 집시랑 물 받아 빨래하던 우리 어머니들 마음,
經도 典도 들여다본 적 없는
- 김정원, '화엄 세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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