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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이 되는 글/좋은글

빈 의자

by 목달이버선 2018.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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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아직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축 늘어뜨린 왼손보다 


무릎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그걸 말해준다. 


손 위에 번져가는 검버섯을 지켜보듯이


그대로 검버섯으로 세상 구석에 피어난 듯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는 일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필사적인 증거였다.


어느날 그 침묵이 텅 비워진 자리,


세월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 후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빈 의자에는 


작은 새들조차 날아오지 않았다.


 


             - 나희덕, '빈 의자'



                                         -출처: 아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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