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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 나희덕, '밤, 바람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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