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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獨舞)
검붉은 벽돌담을 배경으로
흰 비닐봉지 하나,
자늑자늑 바람을 껴안고 나부낀다.
바람은 두어평 담 밑에 서성이며 비닐봉지를 떠받친다.
저 말없는 바람은 나도 아는 바람이다.
산벚나무 꽃잎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때,
눈물 젖은 내 뺨을 서늘히 어루만지던 그 바람이다.
병원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통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속수무책 깍지 낀 내 손가락들을 가만히 쓰다듬어주던 그 바람이다.
제 몸 비워버린 비닐봉지는
하염없고 하염없는 몸짓을 보여준다.
저 적요한 독무는
상처의 발가락마저, 두 발마저, 지워버렸다.
- 엄원태, '독무(獨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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